Book Review
Bacteria to AI: Human Futures with Our Nonhuman Symbionts N. Katherine Hayles, University of Chicago Press (2025)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

#포스트휴머니즘 #캐서린_헤일스 #계산매체 #AI

포스트휴머니즘 이론가로 잘 알려진 캐서린 헤일스의 신작 『박테리아에서 AI까지』는 기본적으로 인간중심주의의 극복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점에서 최근의 연구들에서 공통으로 제기하는 의제와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그가 주목하는 인간중심주의의 핵심축은 '인지'이며 통합 인지 프레임워크(integrated cognitive framework: ICF)라는 접근방법을 제안하고 있으니 이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겠다.

인지를 강조하는 것은 언뜻 보면 인간중심주의를 지원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그는 인간의 인지적 역량을 재사고하고 재배치하는 것이 인간중심주의를 공략하는 데 꼭 필요하다고 보았고, 이를 위해 인지(cognition)와 의식(consciousness)을 구분한다. 최근에 번역된 『비사고, 인지적 비의식의 힘』(커뮤니케이션북스, 2025, 원전은 Unthought: The Power of the Cognitive Nonconscious, University of Chicago Press, 2017)에서 주장한 '비의식적 인지 능력'에서도 이 관점을 엿볼 수 있다. 박테리아를 포함한 비의식적 생물은 포유류 같은 의식적 존재들보다 지구상에 훨씬 더 많은데, 이 비의식적 인지를 무시해왔다는 것이다. 여기까지만 보면 도나 해러웨이의 공생 개념, 인간-비인간 논의와 자연스레 연결된다. 하지만 이렇게 인간의 의식적 인지가 비의식적 인지와 연결될 플랫폼으로 제안한 ICF라는 개념적 전환에서는 (책 제목이 암시하듯이) AI의 궤적까지 다루고 있고, 여기에 생물학적 공생 개념을 접목하고 있다.

더 구체적으로는 이 ICF를 삼중결합된 마이크로/진화/테크노(micro/evo/techno)의 관계성을 이 책의 큰 틀로 삼고 있다. 저자가 AI를 비롯하여 컴퓨터, 모바일 등을 포괄한 계산 매체(computational media)라는 것을 비중 있게 다루는 것은 그것이 인간과 인지적 집합체(cognitive assemblages)를 이루어 협력함으로써 오늘의 세계에서 대부분의 작업을 수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중심주의 관점에서는 아무리 기계가 발달해도 인간만이 결정권자라고 믿고 있지만, 실제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코로나 팬데믹과 유전자 편집 사례에서 보듯이, 의사 결정과 행위 주체성은 인지적 집합체, 즉 인간과 비인간에 더하여 계산 매체의 집합체 전체에 분산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그렇다고 기술낙관적인 입장은 전혀 아니다. 우리가 인지적 집합체와 깊이 동맹을 맺고 있는 만큼, 계산 매체가 오작동할 때 일어날 사회적 혼란이 막대할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문제는 이 동맹(사실은 의존)을 되돌릴 수 없는 상황까지 왔고 현실적인 선택을 해야 할 지경에 이르렀다는 사실이다. (스마트폰 없이 살 수 있나?) 이 선택이 다음 세대가 맞을 미래를 결정하게 될 것이므로, 이 집합체의 본질을 더욱 철저히 탐구해야 하는 것이 우리의 의무라고 강조한다.

그의 '철저한 탐구'는 신중한 용어 선택부터 시작된다. 예컨대, 이 책에서는 인간을 'humans'라고 표기하고 있는데, 서문에서 밝혔듯이 편집자가 'human being'이 올바른 표현이라고 했음에도 사람들이 "dog being", "whale being"이라고는 쓰지 않는다는 이유로 반대했다고 한다. 그 생명체들에 "being"을 붙이지 않는 것은 사람만큼 가치 있는 존재로 인정하지 않는 것이며, 자신이 평소에 남성 우위적인 용어를 피하듯이, 이 책에서도 인간중심적인 용어를 피하겠다는 것이다. 사실 캐서린이 '사고(thought)'가 아닌 '인지'를 선택한 이유도 '사고'라는 용어가 주는 인간중심적인 느낌을 멀리하면서도 인간의 중요한 역량을 강조하려는 고민이 담겨 있다. 그에게 인지는 "정보를 의미와 연결하는 맥락에서 해석의 과정"이고, 이 정의는 진행적 성격, 즉 '되는 과정'을 강조한다.

한편, 신물질주의(neomaterialism)의 몇몇 주장과 약간의 차이를 보이고 있다. 예컨대 제인 베넷, 로지 브라이도티와는 물질의 행위성, 그리고 그것이 인간을 포함한 생명체에 밀접하게 연관된다는 인식을 공유하지만, 캐서린은 물질적 과정의 행위적 힘과 생명체의 해석 및 인지 능력을 구분한다. 생명체는 자신에게 일어나는 일에 '이해관계'를 갖지만 물질적 과정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비사고』에서 쓰나미는 인파가 붐비는 해변 대신 절벽을 덮치기로 '선택'할 수 없다고 예시하면서 생기론, 범신론에 거리두기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그래서 그는 물질적 과정을 가리킬 때는 'agents'라는 용어를, 생명체의 경우는 인지 능력을 구현하므로 'actors'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이것은 다양한 상징적 추론을 하고 다양한 언어를 광범위하게 사용하는 능력 등을 언급하면서 인간이 가진 남다른 능력을 부각시키는 효과가 있다. 동시에 인지 영역 자체는 모든 생명체와 (일부) 계산 매체까지 포함하고 있다. 실제로 캐서린의 ICF 접근법 프레임에서는 컴퓨터가 해석을 수행하고 의미를 창출하는 능력을 포함한 인지적 능력을 지녔다고 주장한다. 이 주장은 '의미(meaning)'를 인간만이 생산한다는 인간중심주의를 거부하는 것이다. 인지적 집합체가 점점 더 많은 부분을 감당하는 사회에서 인간이 설계하고 통제한다고 자신하기 어렵고, 이제는 설계 과정을 사람이 머릿속에 담아둘 수 없을 정도로 소프트웨어에 의존하고 있다. (디자이너, 건축가는 이를 실감할 것이다.) 따라서 "인간만이 결정을 내린다고 가정하는 것은 위험한 환상이며, 인간만이 통제권을 가졌다고 생각하는 것은 더욱 위험하다"고 설명한다.

이 책에서는 마이크로에 해당하는 부분을 양자 실험에서 드러나는 현상으로 설명하는데 캐런 버라드를 소환한다. 진화의 경우는 도나 해러웨이를, 테크노는 베르나르 스티글러를 언급하면서 세 사람의 고유한 주장을 설명하고 자신의 주장과 맞닿는 부분, 그리고 상이한 부분을 비교하고 있다. 이 비교 과정은 어느 주장의 설득력이 우위에 있느냐와는 별개로, 독자 입장에서는 동시대 영향력 있는 연구자들의 철학을 입체적으로 볼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이 책에서 중요한 또 다른 용어로는 테크노공생(technosymbiosis)이 있는데, '공생'은 생물학적 용어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계산 매체를 생명체로 간주한다는 뜻은 아니다"라고 못 박고 있다. 다만, 캐서린은 기술적 범주와 생물학적 범주를 '인지'라는 공통 특성으로 결합 근거를 마련했다. 그리고 보편적 사물, 일상적인 기계와 시설보다 계산 매체와 인공지능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이유는 그것들이 바로 인지 능력으로 기술들 사이에서 지배적 위치에 있기 때문이다. 한 개의 파이프가 파손되어도 다른 파이프들이 작동하므로 우회해서 물을 흘려보낼 수 있지만, 시스템 제어 장치가 고장 나면 전체 시설이 마비된다고 설명하는데, '먹통' 사태로 알려진 최근의 2024년 MS 업데이트 오류, 2022년 카카오 먹통 사태 등의 서비스 장애, 최근 국정자원 서버실의 화재 사건이 미친 파장을 떠올려보면 이를 실감할 수 있다.

이 책은 현재의 진단과 분석을 넘어서 의미와 책임을 강조하고 있으며, 마지막 장에는 "인간 우위를 강조하지 않으면서 책임을 질 가능성"을 여는 것으로 마무리한다. 저자가 강조하듯 이러한 시도는 지금도 없지 않고 매력적이다. 하지만 제이슨 무어, 도나 해러웨이 등의 작업에서 볼 수 있는 접근법 등이 인공지능과 인지 미디어가 사회의 많은 부분을 '인수'하게 되는 우리의 미래를 풀어내기는 불충분하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생명망(web of life) 접근법을 포용하면서 인간과 비인간 세계를 위한 긍정적 미래로 나아갈 포괄적이고 견고한 틀을 제공하려는 의도를 보여준다.

이처럼 저자는 미래에 대한 희망을 놓지 않고 있는데, 이는 유발 하라리의 『호모 데우스』가 데이터주의에 치중하여 디스토피아적 허구라고 비판한 데서도 알 수 있다. 유기체가 알고리즘이므로 기계가 대체하지 못할 것이 없다는 하라리의 주장에 반대하면서, 인간의 유연성과 창의성은 현실의 복잡성과 예측불가능성을 다루기 위해 진화해왔음을 강조한다. 여기에 대해서 찬반이 있을 수 있고 그 외에 논쟁 지점이 없진 않겠으나, 최근까지 이어진 인간-비인간 의제에 AI 전환에 국가마다 달려드는 정황을 고려한 이 책의 논지는 눈여겨볼 만하다. 오늘의 정황을 역전시켜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고 그럴 가치도 없으나 손 놓고 있을 순 없으니, 기술관료주의와 신유물론 사이 어딘가 균형 잡힌 시각으로 할 일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그야말로 'one battle after another'일 텐데, 이 책은 그런 동기부여의 의미가 있을 것 같다.

©김상규, 2025. 10.